DJ정부시절 대마불사의 신화를 깨고 해체된 대우그룹의 단초는 노무라증권의 보고서 한 장 때문이었다. 무리한 세계경영으로 자금난이 위태롭다는 사발통문을 돌린 것이다. 국제 금융시장은 득달같이 반응해 신규 차입은 커녕 대출금 회수에 나섰다. 세계경영의 귀재 김우중 회장은 국제시장에서 금융차입이 막히자 국내 금융기관에 손을 벌렸다. 그러나 그릇이 작은 국내 금융시장의 자금차입은 한계에 부닥쳤다. 결국 그룹은 해체하며 계열사는 매각하기 시작했다. 천문학적 규모의 외화차입 규모에 따른 이자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일짜 힐튼호텔을 매각했지만 매각대금은 한 달 이자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대마불사 신화가 깨진 채 그룹해체란 비운을 맞은 것이다. 섬유수출 내수패션 동반침체 심상찮다. 그리스와 스페인 등 남유럽 쇼크를 강 건너 불구경한 우리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1000조에 육박한 가계부채의 시한폭탄 초침소리가 재깍재깍 기분 나쁘게 엄습해온다. 유럽재정위기가 전 세계경제를 강타하면서 무역의존도가 97%가 넘는 한국경제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수출이 줄고 내수경기도 침체되면서 외부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위기 경고음이 잇따라 들려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워싱턴포스트, JP모건, 노무라증권이 우리경제 성장률이 3%가 무너져 2.5%대로 추락한데 따른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일부 외국기관들은 수출과 내수부진의 역풍에 몰린 한국은 가계부채가 가처분 소득의 155%에 달해 그리스와 스페인처럼 될 수 있다고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 국가경제를 거덜 낸 YS정부 때 당시 강경식 부총리가 “우리경제 펀더멘탈은 튼튼해 걱정 없다”고 큰소리치다 전대미문의 IMF 고통을 겪은 경험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MB정부가 “우리경제는 우등생”이라고 낙관한 것을 보고 안심은 되지만 뭔가 맨살 위를 독사가 기어가는 섬뜩함을 떨칠 수 없다. 기둥을 치면 대들보가 흔들리고, 연못에 돌을 던지면 동심원이 번져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세계경제가 위축되고 중국경제 마저 경착륙되는 상황에서 우리 섬유패션산업이라고 안심할 수만은 없다. IMF때는 섬유수출업체들이 떼돈을 벌어 대박을 터뜨렸지만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천항지차다. IMF는 세계경제는 끄떡없는 상황에서 한국만이 겪은 재앙이었다. 경제를 ‘겡제’라고 부르는 YS정권의 무지 때문에 정부곳간에 외화가 거덜 났지만 바깥시장은 좋았다. 더구나 환율이 요동쳐 섬유수출업계는 돈벼락을 맞았다. 해외시장 경기는 좋고 원달러 환율 800원대에 원부자재를 사서 달러당 1800원 이상 네고를 했으니 수출업체들이 돈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의류수출밴더들이 IMF때 돈 벌어 서울 도심 금싸라기 땅에 빌딩을 사들이고 해외에 대규모 설비투자를 한 것이다. 밴더들뿐 아니라 면방, 화섬, 직물가릴 것 없이 수출기업은 배터지도록 만끽했다. 반면 임가공료를 원화로 결제 받는 염색업계를 비롯 하청 임가공업체는 그때나 지금이나 피골이 상접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의 상황은 98년 IMF때나 2008년 금융위기와는 상황이 완전 뒤바뀌고 있다. 품목에 따라 격차는 있지만 6월중 섬유수출 실적은 실망과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 실제 지난 6월 섬유수출실적은 작년 동월대비 무려 7.2%나 감소했다. 5월에는 그래도 작년 동월대비 2.14% 소폭 증가했으나 6월 들어 곤두박질쳤다. 미국시장만 겨우 0.3% 늘어났고 EU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중국마저 15%나 감소했다. 이로써 올 상반기 섬유수출은 작년 동기대비 2.6%가 감소한 77억 6000만 달러에 머물렀다. 하반기에도 별로 좋아질 기미가 없다는 점에서 당초 목표한 170억 달러는 커녕 작년 실적 159억 달러 유지도 헉헉 거릴 것으로 보여 진다. 대형 의류수출밴더들의 해외소싱을 통한 대미수출이나 글로벌 SPA브랜드 개척을 통한 수출은 증가한 것으로 보이지만 타품목은 전망이 어렵다. 수출비중이 가장 높은 직물류도 환편, 경편 등 니트직물은 8, 9월이 더욱 어려울 전망이다. 유럽이야 아예 기대할 수 없지만 터키나 중동 모두 8, 9월 상황이 안좋다는 것이 수출현장의 판단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연사물은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사직물은 니트나 우븐 가릴 것 없이 섬세한 공정상 중국이 쉽게 따라올 수없는 특성 때문이다. 면방은 국제원면가격 추락으로 눈덩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화섬 역시 수요 감소와 공급과잉으로 2분기부터 적자로 돌아선 상황이다. 내수패션은 더욱 앞이 안보인다. 오죽 다급하면 백화점이 시상 처음으로 장장 한 달간 여름세일을 실시하고 있지만 소비자 반응은 냉담하다. IMF때는 부자들이 소비를 주도해 명품매출은 늘어났지만 요즘은 부자들 마저 지갑을 닫아버렸다. 전체 매출이 감소한 것은 물론 내용도 좋지 않다. 무리한 세일행사로 정상 판매가 줄어들다 보니 수익성이 더욱 악화됐다. 내수패션경기는 경제 상황보다 날씨가 관건인데도 최근 2년간은 날씨가 거꾸로 가고 있다. 봄에는 늦추위가 주말에는 의례껏 비가 내리고, 여름에는 물난리, 가을이 없고 겨울은 이상난동에 늦추위로 경기를 망쳤다. 일취월장하던 내수패션경기가 위축되면서 최근 들어 매물이 늘어나고 일부업체의 부도설까지 나도는 등 횡횡한 분위기다. 요즘 추락하는 아파트 매물처럼 시장에서 거들떠보는 임자가 없다. 총선과 대선의 양대선거는 의류패션경기에 더욱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선거 특수는 커녕 있는 매기마저 덮어버린 것이 선거경기인 것이다. 불황에도 성장하는 기업은 뭔가 다르다. 그러나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어렵다고 하지만 고래심줄처럼 강한 섬유패션산업의 조종(弔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외 경제 사정으로 인해 다소 위축되기는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경기가 아무리 나빠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기본 수요는 있기 마련이고 패션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차별화, 신기술, 신설비를 바탕으로 전력투구하면 틈새시장은 얼마든지 있기 마련이다. 이미 드러났듯이 잘되는 품목과 잘되는 시장을 쫓아 공략해야한다. 연간 의류수입만 100조원에 달한 미국의류시장을 비롯 크고 작은 수출시장은 열려있다. 내수패션시장이 얼어붙었다고 하지만 기본 수요는 있기 마련이다. 모두가 마이너스 성장이라고 엄살인 반면 상당수 성장하는 기업도 있다. 무언가 다르기 때문이다. 스포츠이건 장사이건 최상의 방어는 최상의 공격이다. 호황 때 챙기지 못한 내부약점을 불황 때 제대로 점검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한다. “호황은 좋다. 불황은 더욱 좋다”는 마쓰시다 전기 창업주의 유명한 경영철학은 되새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