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 속에 보낸 여름의 끝자락이 너무 팍팍하고 숨 가쁘다. 올림픽의 환희가 벌써 망각 속에 잊혀지고 호사다마가 어지럽게 돌아간다.

국가나 개인이나 이웃을 잘 만나야 하지만 우리 주변엔 상종 못할 고약한 집단이 도사리고 있어 편할 날이 없다. 지구촌의 변방 북한은 얼씬하면 땡깡이고, 아시아의 패권을 노린 중국의 기세는 갈수록 등등하다.

순진하게 중국의 대항마로 일본을 성원했지만 그 일본이 파렴치 마각을 다시 드러내 비분강개와 함께 치가 떨린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는 섬나라근성에 한두 번 속은 것은 아니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거리가 해도 너무한다.

스스로 1년 8개월의 긴 조사를 통해 일본군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담화문까지 발표한 위안부문제를 “그런일 없다”는 정신착란증에 피가 거꾸로 솟는다. 독도문제는 국제사회가 눈치를 보지만 위안부 문제는 어느 나라도 일본을 편들지 않는다.

OECD국가 중 가장 비싼 금리 내려야

심지어 미국도 성노예라고 성토하는 판에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한 짓거리다. 자기 꾀에 스스로 넘어지는 자충수를 둔 것이다.
양심도 반성도 없는 철면피한 망동에 영원히 상종하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경제문제와 국제사회의 역학 관계상 싫건 좋건 마주하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처지인 것이다.

가뜩이나 독도와 위안부 문제로 부아가 치민 판국에 웬 매머드급 태풍이 두개나 한꺼번에 들이닥쳐 나라 전체를 할퀴고 초토화시켰다. 좀 안된 얘기이지만 이번 태풍은 일본으로 갈 줄 알았는데 자연도 가닥해 진로를 잘못 잡은 것 같다.

이래저래 허탈한 탄식과 한숨이 길게 밴 상황에서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올린 아주 기분 좋은 소식이 그나마 위로였다. 한국에는 안심하고 돈 빌려주며 투자해도 좋다는 국제 신용 보증서란 점에서 잃어버린 20년의 일본이 배 아프게 돼있다.

그렇다고 우리경제가 마냥 안심하고 있을 처지가 못 된다는 것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유로존 사태가 좀처럼 수습되지 못해 글로벌경제는 여전히 침체되고 내수경기 또한 바닥 밑 지하실에 갇혔다.
연말 대선이 임박하면서 정치권은 물론 모든 언론이 경제는 뒷전이고, 온통 선거얘기로 도배질을 하고 있다. 우리경제가 내부적으로 안심할 정도의 태평성대는 아닌데도 신기루에 도취해 있는 느낌이다.

뭐니뭐니해도 국내 경기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의 뇌관인 1000조원 규모의 가계부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백약이 무효라는 지적이다. 빚내서 산 집값은 떨어지고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판에 소비심리 회복은 꿈도 꿀 수없는 것이다.

대안은 빚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금리를 파격적으로 내려야 한다. 말은 OECD국가이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 하면서 금리는 후진국과 다름이 없다.

OECD 국가 대부분이 제로금리 아니면 1~2%에 불과하지만 우리에 은행이자는 싸야 연리 6%다. 제 2금융권은 10%에 달한다.
1000조원의 가계부채 금리가 10%이면 이자만 연간 100조원에 달한다.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빚 못 갚겠다며 ‘배째라’ 움직임이 등장했다.

이 숫자가 1만명, 2만명 되면 인터넷을 타고 모조리 ‘배째라’로 나올 수 있다. 결국 은행이 망하고 한국만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대선 후보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함에도 온통 복지타령이다. 난세의 영웅을 기다리는데 모두가 혹세미문의 선동가로 보인다.

중언부언 하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은 두꺼비처럼 얼굴이 두꺼워서 그런지 기업하는 사람 고통을 모른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걸으며 재수 없으면 안쪽으로 떨어지는 처절한 고통을 모른다.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으레 장사하는 사람의 엄살정도로 치부한다. 눈 있고 귀 있으면 신문에 도배질한 상반기 경영실적만 봐도 상황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간다.

한국거래소가 엊그제 공개한 올 상반기 상장기업의 경영실적을 보면 4대 기업 중 1개 기업은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적자를 면한 기업도 작년에 비해 80%가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줄었다.
섬유ㆍ패션업계도 매한가지다. 전체 섬유ㆍ패션 상장기업 중 상분기에 작년보다 영업이익이 늘어난 기업은 영원무역과 한세실업, 태평양물산 등 다섯 손가락 미만이다.

수출기업은 유로존 사태로 인한 글로벌 경제위기 확산으로 근본적인 수요 감소가 빚어졌다.
시장가격은 더욱 내려가고 경쟁은 가열되고 있는 것이다.
내수경기는 수출보다 더욱 심각하다. 천문학적인 가계부채와 하우스푸어 속에 소비심리가 죽은 것이다.

이같은 와중에서 때마침 섬유패션스트림간 원자재가격을 둘러싼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면방과 화섬업계는 “면사값과 화섬사값을 올려야겠다”고 하고 다운스트림은 “해외시장이 엄동설한인데 무슨 발상이냐”고 펄쩍 뛴다.
장사란 궁극의 목적이 이익창출이지만 이럴 때 일수록 역지사지를 생각해야 한다.

업스트림은 다운스트림을, 다운스트림은 업스트림 입장에서 한발씩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실제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맞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맞다. 면방업계는 상반기 결산에서 웅변으로 말해주듯 눈덩이 적자에 탈진상태다.

인도산 면사가 시장을 교란해 어쩔 수 없지만 누적적자 규모가 워낙 커 가격현실화가 불가피하다. 하반기 미국 소매경기가 기대보다 떨어지지만 밴더들이 면방업계의 고통을 감안해 동반성장 해야한다.

업ㆍ다운스트림 동반성장 협력해야

화섬업계 역시 경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원료인 PX와 PTA, MEG가격이 덩달아 강세를 보여 원사값에 반영하지 못하면 적자경영을 면할 수 없다. 다운스트림업계 입장을 고려해 8월에 인상키로한 파운드당 50원선 인상을 9월과 두 차례 나누어 반영한다는 것이다.

반면 니트직물이나 합섬, 교직물업계는 가뜩이나 해외시장이 냉각돼 엄동설한인데 무슨 원사값 인상이냐고 반발하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그 좋던 ITY싱글스판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여 시한폭탄이고, 합섬직물도 연사물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흉년이다.

그렇다고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이 각을 세우고 평행선을 고집하면 양측 모두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이 많다. 원자재업계는 인상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을, 다운스트림은 올려서는 안되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나 거부운동은 안된다. 그리고 원사값 인상 내용을 득달같이 해외바이어에게 알려야한다. 그래야 오더가 조기에 재개되고 가격도 오를 수 있다. 본지가 전면에서 역할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도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이 원사값 인상을 놓고 아웅다웅 할 때가 경기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