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이 국회를 전격 통과하면서 그 후유증으로 온 나라가 바람 잘날 없다. 한·미FTA를 결사반대하는 야당과 시민단체 동조자들이 연일 무효화 투쟁을 벌이면서 거리로 뛰어나와 발칵 뒤집히고 있다.

귀엔 거슬리겠지만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절반이상이 “여당이 날치기를 감행하기 전에 조금 더 기다리며 설득하는 정치력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야당도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떠나 대통령의 재협상 약속을 담보로 못 이긴 채 합의처리 하는 통 큰 정치가 필요했다는 지적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

“미련함은 앞서고 지혜는 뒷선다”고 하지만 여야 모두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외통수 정치를 떠나 상생의 정치를 한다면 이같은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협상과 타협이라는 정치의 기본만 제대로 지켰으면 요즘 중동·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쟈스민 항쟁 같은 혼란상은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역의존 80%, 자유무역 선택 아닌 필수

그러나 일을 하다보면 손도 베고 접시도 깨는 수가 있다. 여·야 모두 국익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제 한 번 떠난 기차를 되돌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어느 것이 더 큰 국익인지를 냉철히 판단하고 이 혼란을 수습해야 한다. 하루속히 한·미FTA로 피해를 입은 분야를 어떻게 지원하고 살릴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중언부언 하지만 우리는 세계 108번째 좁은 국토에 살고 있으면서 인구는 스물여덟번째로 많은 나라다. 자원이 없는 우리처지에서 무역으로 먹고 살고 있고, 실제 우리경제의 80%를 무역에 의존하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우리나라는 지난해 수출 세계 7위와 무역 9위의 위업을 달성했고, 오는 12월 12일을 기해 대망의 무역 1조달러 달성의 위엄을 이루게 된다. 해마다 개최되는 11월 30일 무역의 날 기념식을 올해는 12월 12일로 늦추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자유무역협정은 필연적인 논리이고 현실적인 대안이다. 우리가 피해를 입는 분야는 정부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 최소화해야겠지만 작은 것에 매달려 큰 것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한 가지 명확히 해둘 것은 일반적으로 한·미 FTA가 발효되면 자동차에 이어 섬유분야가 대표적인 수혜업종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재 산업 구조상 아무 노력 않고 저절로 섬유수출이 급증하는 횡재를 기대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물론 한·미 FTA가 발효되면서 당장은 몰라도 5~10년 후에 우리 섬유·수출경쟁력이 크게 강화되는 것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 가만히 있어도 시장을 보호받던 섬유쿼터제가 폐지된 2005년 이후 세계의 공장 중국 등지에 속수무책으로 빼앗긴 미국시장 세어를 어느 정도 벌충하는 천재일우 호기인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섬유수출은 12.2억 달러, 수입은 3.6억 달러로 8.5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 89년 전성기 때 우리나라의 대미 섬유수출 43.2억 달러에 비하면 4분 1수준으로 급감했다. 지난해 미국의 섬유류 수입국 중 한국의 비중은 불과 0.9%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 41.2% CAFTA-DR(중남미·카리브 국가) 7.6%, 인도 5.8%, 멕시코 4.8%에 비해 한국은 사실상 섬유수출국 중 꼴찌인 20위권에 머물고 있다.

이런 부끄러운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전 산업평균 1.5%에 비해 10배 이상인 고관세인 섬유분야 평균 13.1%(최대 32%)의 관세가 폐지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쟁국인 중국과도 품질을 앞세워 얼마든지 맞짱을 뜰 수 있게 된다.

이같은 호재를 근거로 산업연구원은 한·미 FTA가 발효되면 2010년 기준, 우리나라의 대미 섬유수출은 연평균 2억 달러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증가와 생산성 향상 등으로 15년간 연평균 4846억원의 생산증대 효과가 기대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시기이고 품목이다. 이같은 장미빛 청사진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우리내부의 섬유산업 구조조정과 새로운 투자가 병행돼야 되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수출이 급증하는 그런 요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우선 한·미 FTA 협정내용을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면 우리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주종품목의 관세철폐는 대부분 향후 5년에서 10년 사이에 철폐되도록 돼있다. 관세 즉시 철폐 품목인 화섬스웨터, 남성셔츠, 모직물, 면양말, 화섬단섬유 중 효과를 볼 수 있는 품목은 극히 미진하다.

수출할 수 있는 중대형 스웨터 생산 공장이나 와이셔츠 생산 공장은 이미 공동화돼 오늘 당장 관세가 즉시 철폐돼도 보고도 못 먹는 떡이다. 더구나 4년 전 협상 당시 우리는 ‘패브릭포워드’나 ‘가먼트포워드’를 강력히 요구했으나 미국업계의 강한 입김으로 ‘얀포워드’로 결정 났다. 원산지 규정을 원사기준으로 했고 면사는 화이버(원면)를 기준으로 해 값비싼 미면을 사용하지 않으면 관세 폐지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돼있다.

우리나라에 생산기반이 강하고 품질과 가격경쟁력이 있는 합섬직물이나 니트직물 같은 수출 주종품목은 대부분 5~10년 후로 관세 철폐가 미뤄져 한·미 FTA효과를 당장 기대할 수 없다. 물론 5~10년 후엔 그만큼 경쟁력이 강해 우리가 중국 등지에 뺏겼던 시장세어의 실지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은 분초를 다투며 변화하면서 변곡점을 경신하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 인도, 베트남 같은 나라가 향후 5~10년 내에 미국과 FTA 체결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만에 하나 그같은 우려가 현실화될 때 수혜업종인 우리 섬유수출산업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의류 생산기반 못 살리면 속빈강정

따라서 필자가 십수년 전부터 줄기차게 주장해온 것처럼 전후방 연관 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의류봉제산업의 생산기반 복원이 발등의 불이다. 90년대 후반 이후 난파선에 쥐 빠져 나가듯 해외로 탈출해버린 의류봉제산업의 생산기반만 어느 정도 복원됐으면 당장 한·미 FTA혜택을 만끽할 수 있게 됐다. 어떻게 하든지 최소한의 국내 생산기반을 지키고 있어야함에도 이를 외면하고 포기해 곰팡이와 거미줄만 가득할 정도로 처절하게 망가진 것이다.

정부의 섬유패션산업 정책도 ‘얼은 발에 오줌 누기 식’의 의류봉제산업 육성 정책이었지 지정한 산업발전의 중장기 대책이 없었다. 스트림간에도 의류봉제가 죽건 말건 직물, 화섬, 면방만 살면 그만이라고 외면한 것이 결국 자업자득의 부메랑이 되고 말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경도된 섬유패션산업 정책을 바로잡을 때다. 통 크게 몇천억 규모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지원해 의류봉제산업을 육성해야 한·미 FTA효과의 극대화와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 한·미 FTA 효과의 극대화를 위한 ‘에니패스’는 의류봉제산업 복원이 선결과제 임을 거듭 강조 해둔다. <국제섬유신문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