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본질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다. 반대로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면 네모난 삼각형과 다를 바 없다.
요즘 돌아가는 통박은 정치가 국태(國泰)를 흔들고 민안(民安)을 심하게 그르치고 있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극도로 이반된 민심에 자중지란까지 겹쳐 옹기짐 지고 자갈밭에 넘어지기 직전이다. 전통야당 민주당 또한 통합을 둘러싼 내분으로 국민의 눈 밖에 났다.

이런 추세로 내년 대선을 치르면 구름 위에 떠있다는 안철수에게 장기판의 차로 졸 치기 당하기 십상이다. 여야 모두 마지막 한 모금 남은 물통속의 물을 모래에 쏟아 붓는 자가당착에서 한시바삐 탈출해야 한다.

세상은 변해 변곡점의 꼭대기에 와있다. 힘과 권력의 프리미엄으로 30%는 먹고 들어갔던 여당의 강점도 옛 얘기이다. 여당의 일방 독주에 동정 받던 야당의 이점도 소멸되고 있다. 국민은 정치인들이 취급하는 형편없는 핫바지가 아님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세계 9위 무역대국의 금자탑

중동의 어느 지도자가 주장한 것처럼 ‘경제는 말이고 정치는 마차다’ 말이 마차를 끌고 가야지 마차가 말을 어거지로 끌고 가면 배가 산으로 갈수밖에 없다.

천만다행으로 3류 정치에 2류 행정의 풍토에서 우리 경제는 우등생으로 쑥쑥 크고 있다. 12일 무역 1조 달러 달성을 기념해서 열리는 올해 무역의 날을 계기로 위대한 한국경제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무역 1조 달러 세계 경제사를 바꾼 이 쾌거야 말로 또 한 번 한강의 기적을 넘어 세계 1등 국가의 자긍심이다. 세계에서 단 8개뿐인 무역 1조 달러 클럽에 대한민국의 이름을 새롭게 올렸다는 것은 경천동지할 일이다.

돌이켜보면 식민지 피지배국에서 갓 벗어난 지난 48년 1900만 달러였던 수출 규모는 2011년 5150억 달러로 무려 2만 7000배나 증가했다. 무역통계를 제대로 잡고 있는 세계 131개국에서 한국이 수출 증가율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수출 주력 품목도 자동차, 반도체, 선박, 섬유화학 등 중화학 첨단 제품으로 바꼈다. 올해 제 48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이들 업종이 큰 상을 대부분 휩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국가건 개인이건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어서는 안된다. 오늘의 무역 1조 달러 클럽 달성의 가장 큰 원천은 수출이고 수출의 효자는 섬유산업임을 부인할 수 없다.

50년대 후반을 시발로 지난 97년 단일 업종 최초로 섬유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해 ‘섬유의 날’이 제정된 것처럼 수출의 모태산업은 섬유산업이다. 지난 77년부터 작년까지 34년간 섬유로번 무역수지 흑자 3030억 달러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마중물이고 종자돈이었다. 이 기간 우리나라 전체 무역수지 흑자 규모 1892억 달러의 거의 배에 가까운 규모를 섬유가 달성했다. 자동차, 반도체, 조선, 석유화학 가릴 것 없이 전 산업이 섬유에 빚을 지고 성장한 것이다.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우리 섬유수출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30% 내외를 차지했다. 무역의 날 포상에도 섬유수출업계가 가장 크고 많은 상을 휩쓸었다. 첨단제품과 중화학제품 수출 비중이 커지면서 섬유비중이 축소됐을 뿐이다. 지금은 전체 수출의 7%내외이지만 알토란같은 가득액은 가장 우등생이다.

그럼에도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꺼져간 듯한 섬유산업이 다시 부활하면서 재도약을 다지고 있지만 국민 의식은 섬유를 아직도 홀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무역협회가 리서치앤 리서치에 의뢰해 무역 1조 달러 시대 국민 의식조사에서 무역 1조 달러달성에 가장 이바지한 인물이나 산업에서 섬유기업인은 꼽히지 않았다.

경제인 중에 이건희 회장이 1위, 현대그룹 명예회장 2위, 삼성 창업주 이병철 선대회장 이름만 나왔다. 섬유수출을 효시로 국가 수출산업을 선도한 기라성 같은 원로 섬유기업인들은 기억에도 없다. 향후 수출 주도산업에서도 정보기술산업(IT)산업이 58%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 비중을 차지했을 뿐 고부가가치 유망산업인 섬유패션산업은 철저히 배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섬유패션산업은 시체말로 아직 죽지 않았다. 오히려 재도약의 기치를 높이들고 제2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다.

수출도 작년에 138억 달러를 초과해 전년 보다 19%나 증가했고, 올 수출 또한 당초 목표한 143억 달러에서 17억 달러를 증액 조정한 160억 달러달성까지 가능해졌다. 세계의 공장 중국의 등장으로 잃어버린 10여 년간 무수한 기업이 조난당한 고통을 딛고 원기를 회복한 것이다.

의류용 섬유의 고급화가 숨 가쁘게 이루어지고 비행기, 자동차, 선박을 비롯한 각종 산업용 섬유소재로 섬유가 각광받고 있다. 경향화 시대에 강철보다 10배나 강한 슈퍼섬유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2020년 세계 4강 섬유패션강국을 향한 업계와 정부의 의지 또한 차돌처럼 강하다. 세계 어느 국가도 예상하지 못한 식민지 피지배 독립국가가 세계 9대 무역대국으로 우뚝 선 기적은 섬유산업이 시작했고 향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이 같은 대전제에서 업계의 투자와 기술개발 열기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과감한 정책지원이 시급하다. 제조업을 숨 막히게 하는 잘못된 대못을 과감히 뽑아야 하고 공동화된 산업기반을 부활하는데 행정과 재정지원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가장 먼저 섬유사업장에 지금 당장 돈보다 더 급한 인력난 해소책을 한시바삐 마련해야한다. 섬유를 비롯 전체 제조업에 4만 6000명으로 묶어놓은 외국인 근로자 쿼터제부터 과감히 풀어야 한다.

노동당국은 노동단체의 얘기만 듣고 “국내 일자리가 줄어든다”며 이 핑계 저 핑계치고 있지만 돈 아닌 금을 줘도 오지 않는 내국인 자리를 외국인 근로자로 채울 수밖에 없다. 사람이 없어 공장문을 닫게 된 제조업 현장의 피 말리는 고통을 탁상위의 잣대로만 판단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미 FTA호재 허송할 것인가.

또 가장 많이 붕괴된 의류봉제 생산기반 복원을 위해 전국적으로 취약계층 또는 탈북자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전용 단지나 클러스터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한·미 FTA란 큰 떡을 쥐어주지만 관세 즉시 철폐 품목의 국내 생산기반이 없어 ‘보고도 못 먹는 떡’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한·미 FTA를 반대한 야당과 시민단체의 집단행동은 당연히 지탄받아야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 중 개성공단제품 역외가공인정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개성공단의 활성화는 수출의 역외가공인정이 바로미터인 것이다.
여기에 생산설비 도입에 따른 은행대출 금리 보전과 직능별 단체의 R&D자금 확대, 중소기업 해외전시회지원예산 확대 등도 시급히 지원해야할 과제다.

때마침 지난 6일 총리공관에서 열린 김황식 국민 총리 주재 FTA활용간담회에서 제기된 섬유업계의 봇물 터진 건의를 정부가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 말고 전폭 수용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