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봉투 사건에 모르쇠로 일관하던 박희태 국회의장이 결국 망신을 당하고 쫓겨나듯 물러났다. 부하에게 장세동을 강요하며 덮어씌우던 노정치인의 말로가 처연하게 됐다.

젊은 검사시절 폭탄주의 대가로 통하던 그는 국민기만의 분노를 감당하지 못해 6선의 정치인생 마지막을 치욕스럽게 마감했다. 온 국민의 존경을 받아야할 입법부의 수장이 하루아침에 부도덕한 찌지리의 원형으로 추락한 정치의 무상을 새삼 느낀다.

그 순간 대통령은 경제인들을 이끌고 열사의 나라 중동을 돌면서 발등의 불인 원유확보 세일즈 외교중이었다. 터키 원자력발전소 수출계약도 유리하게 만들었고 섬유업계에 호재가 될 FTA도 합의했다.

사우디에서는 안정적인 원유확보라는 대어도 낚았다. 건설수출과 플랜트수출 길을 열어 또 다시 대규모 국부창출의 쾌거를 이뤘다. 이 같은 성공적인 순방외교의 기쁨도 측근비리의 늪에 빠져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대통령의 소태 씹는 심정이 오죽할까 싶다.

한ㆍ미 FTA 폐기주장 경제 포기 논리

말을 바꾸어 선거의 계절을 맞아 온갖 선심공세가 판을 친다. 유권자 표심을 자극하기 위해 할말, 안할 말 가리지 않고 여ㆍ야 모두 마구 대포를 쏘아댄다.
그러나 아무리 정치판이 난장판이라해도 최소한 지켜야할 상도(常道)가 있고 금도(襟度)가 있다. 그것이 국익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요즘 민주당이 각혈하며 한ㆍ미 FTA 발효를 중단하라고 하는 것은 포퓰리즘의 극치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무역으로 먹고 사는 우리에게 자유무역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2007년 봄으로 기억된다. 당시 야당과 보수언론들은 노무현정권 출범 당시부터 거의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한나라당이 집권할 때는 모든 것이 로맨스였지만 노무현정권이 하는 정책은 모든게 불륜이고 패덕으로 몰고 가던 시절이었다.
그해 4월 갑자기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태도가 돌변했다. “노무현답다”는 극찬을 해가며 노무현대통령을 비행기 태우는데 안달이 났다.

바로 노무현정권의 최대 치적으로 볼 수 있는 한ㆍ미 FTA 협상타결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여ㆍ야 밀월기간이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이를 계기로 여ㆍ야 상살(相殺)의 정치가 상생(相生)의 정치로 변한 느낌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한ㆍ미 양국이 비록 입장이 바뀌었지만 의회에서 비준안이 통과돼 오는 3월이면 발효를 앞두고 있다. 대외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한ㆍ미 FTA로 향후 10년간 일자리가 35만개가 늘어나고 국내 총생산(GDP)은 5.7%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연구원분석에도 전 산업평균 1.5%에 비해 10배 이상 고관세인 섬유분야 평균 13.1%(최대 32%)의 관세가 폐지되면 대미 섬유수출은 연평균 2억달러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한ㆍ미 FTA가 타결되니까 조바심이 난 것은 중국과 일본이었다. 그래서 중국과 일본은 우리에게 FTA를 빨리 하자고 안달이 난 것이다.

알려진 대로 우리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준이 지난해 98%까지 올라갔다. 세계 9위 무역대국에 무역 1조클럽 가입과 국민소득 2만 3000달러가 수출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보다 시장규모가 16배나 큰 세계최대 시장 미국과 자유무역을 하지 말자는 것은 땡깡성 억지논리다. 아무리 반미감정을 꼬드겨 표를 얻겠다는 속셈일지라도 한ㆍ미 FTA를폐지하겠다는데는 ‘에비’하며 손사래를 칠 수밖에 없다.

물론 한ㆍ미 FAT협정을 폐기가 아닌 수정보완하자는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섬유부문에서도 당시 정부협상대표 중 섬유담당자는 부임한지 얼마 않돼 변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미국 측 주장에 동의해준 천추의 한을 남겼다.

미국 측이 주장한 얀포워드부터 들어줄 일이 아니었다. 관세즉시철폐 품목도 국내 산업이 공동화(空洞化)된 와이셔츠나 스웨터를 넣을 것이 아니라 국내 생산기반이 강한 합섬직물과 니트직물을 포함한 경쟁력 제품을 먼저 넣었어야 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이지만 할 수만 있으면 개성공단 제품의 역외가공 인정도 관철시켰어야했다. 결국 섬유는 가장 큰 수혜업종으로 홍보되고 있지만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섬유업계는 비록 경쟁력 있는 제품의 관세철폐가 5년 이후 10년 내 집중되고 있지만 참고 기다리고 있다. 재협상에서 다소 불리해진 자동차업계 자체도 한ㆍ미 FTA를 전폭 환영하고 있듯이 섬유도 기다림의 미덕 속에 전폭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일선의 당사자들이 좋다고 하는데 훈수꾼인 정치권에서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며 판을 깨려는 것은 국익은 안중에 없고 표만 의식한 행태다. 국가간 협상은 상대가 있는 것인데 단계적인 수정요구가 아닌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게도 구덕도 다 놓치겠다는 위험한 발상인 것이다.
정치권이 FAT에 대해 진정으로 걱정하고 관심을 쏟는 다면 한ㆍ미 FTA가 아니라 새로 시작되는 한ㆍ중 FTA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비록 경제논리보다 정치ㆍ외교ㆍ안보논리로 서둘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한ㆍ중 FTA가 타결되면 웬만한 국내 산업은 초토화 되는 것은 ‘묻지 마라 갑자생’이다.
섬유부문 우리의 관세율은 평균 9.6%이다. 중국의 수입관세율은 11.6%이지만 우리도 가중 평균치로는 11%에 이른다.

한ㆍ중 FTA 국내 섬유산업 초토화 재촉

이 수입관세가 철폐되면 중국산 섬유는 더욱 날개를 달아 봇물처럼 밀려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산의 가격경쟁력은 세계 1위인데 여기에 11% 관세가 철폐되면 중국산이 한국시장을 휩쓸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수입한 섬유류 중 52%가 중국산이다. 작년에 양국 섬유교역 95억달러 중 국산섬유의 대중국 수출은 30억달러에 불과하고 중국산 수입은 65억달러였다. 무역적자가 자그마치 35달러에 달했다.

가격경쟁력뿐 아니라 지난 10년간 중국은 화섬원사에서부터 제직, 염색가공, 의류제품에 이르기까지 최신설비를 무차별 도입해 자동화하고 있다. 생산성과 품질도 일부 특정품목을 제외하고는 한국 못지않게 발전됐다.

한ㆍ중 FTA가 발효되면 국내 섬유산업도 농산물과 마찬가지로 붕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업종별 섬유단체들이 섬유를 FTA에서 제외하거나 농산물처럼 민감품목으로 분류하자는 건의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도 이 같은 심각한 사실을 제대로 알고 대응해야 한다. 한ㆍ미 FTA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한ㆍ중 FTA에 대한 진지한 고민부터 먼저 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本紙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