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1 총선을 맞아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피 터지는 복지혈투가 벌어지고 있다. 여ㆍ야를 불문하고 나라 곳간은 생각 않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겠다는 엉터리 대포소리가 요란한 것이다.

총선 공약에서 맞춤 복지를 주장한 새누리당 복지예산이 향후 5년간 무려 75조원의 정부재정을 요구하고 있다. 보편적 복지를 주장한 통합민주당은 이 기간 164조에 달한 천문학적 정부재정을 필요로 하고 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국민심리를 자극하기 위한 무책임한 인기영합이다. 복지로 망한 남유럽과 이웃 일본의 교훈을 뻔히 알면서 야바위극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인의 대다수가 피땀 흘려 돈 벌어 월급 줘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내 돈도 내 돈’, ‘네 돈도 내 돈’이란 사고 속에 개념 없이 허풍을 떤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정치인의 무책임한 복지남발로 나라경제가 거덜 나는 것은 불문가지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당선만 되면 그뿐 이라는 고약한 행태에 이번 총선에서 본 떼를 보여줘야 한다.

자동차와 섬유는 천앙지차다.

다시 본질문제로 돌아가 한ㆍ미 FTA가 정식 발효되면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다. 한국보다 시장규모가 16배나 더 큰 1조 9000억달러 거대시장이 활짝 열렸다고 연일 도배질하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90%에 달하는 우리 경제구조로 봐 한ㆍ미 자유무역협정의 당위성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향후 15년간 전체적으로 연평균 무역흑자규모가 27억 7000만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발표만 보면 밥 안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게 한다.
노동연구원도 한ㆍ미 FTA로 인한 고용효과가 35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산업연구원은 한ㆍ미 FTA로 인해 전 산업 평균보다 10배 이상 높은 섬유분야 평균 13.1%(최대 규모 32% 인조스웨터)관세가 폐지되면 대미 섬유수출이 연평균 2억달러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증가와 생산성 향상으로 향후 15년간 연평균 4846억원의 생산 증대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ㆍ미 FTA가 한국경제 도약의 구원투수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무역 1조달러 시대를 넘어 2조달러 시대로 가는 도정에서 자유무역은 우리에게 필연적인 논리이며 현실적인 처방이다. 그래서 필자도 FTA를 반대하는 야당이나 과격단체의 무책임을 수없이 질타해온 것이다.
그러나 중언부언하지만 자동차 다음으로 수혜업종이라는 섬유산업은 한ㆍ미 FTA를 내시경으로 들여다볼 때 당장은 속빈강정임을 부인할 수 없다. 성급하고 부박(浮薄)한 생각일지 몰라도 김칫국부터 마시다 곧 실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 같은 장미빛 청사진은 한ㆍ미 FTA 협정에 담긴 관세 철폐기간이 10년 동안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게 돼있어 섬유산업에 당장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8%의 관세 중 지난 15일 발효 즉시 4%로 인하되고 4년 후에는 일괄 철폐되지만 섬유는 그렇지 못한 사정이 있다.

물론 섬유에 관세 즉시 철폐품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웨터나 면양말, 일부 셔츠류 등은 관세 즉시 철폐품목이지만 이것은 국내 생산기반이 붕괴돼 사실상 빛 좋은 개살구다. 니트직물이나 합섬직물, 교직물 등 수출이 가능한 품목은 5년 이후 10년간 단계적 철폐다.

적어도 섬유분야에서 관세 완전철폐를 통한 연간 2억달러 수출증대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10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 같은 대전제에서 FTA가 발효되자마자 무슨 황금알이 쏟아지는 듯이 난리법석을 떠는 것은 너무 속 보이는 짓이다.

언론에서는 미국의 의류제조업자들이 FTA가 발효되면 중국산보다 질 좋은 한국산 원단을 사용하겠다고 잔뜩 바람을 넣고 있지만 이것도 내용을 제대로 몰라서 하는 얘기다. 미국 의류업체들이 원단 관세철폐 혜택을 보기 위해서는 5~10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ㆍ미 FTA의 당위성과 기대효과를 홍보하는 것은 좋지만 실상을 너무 과장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정말 관세인하가 즉시 이루어질 것으로 믿던 미국수입업자들의 실망스런 모습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부나 FTA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무역협회도 실상을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 그 바탕위에서 FTA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대안을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
벌써부터 한ㆍ미 FTA가 발효되면 섬유산업이 뜬다는 성급한 보도에 증권시장에서 섬유주를 샀다 낭패를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섬유주에 투자했다 상투 잡은 투자자들의 항의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한ㆍ미 FTA가 발효됐으면 붕괴된 관세 즉시 폐지 업종을 되살리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은 4년 전 한ㆍ미 FTA 협상타결 직후부터 적극 추진했어야 했지만 손 놓고 있다가 결국 ‘보고도 못 먹는 떡 신세’로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봉제, 스웨터, 양말산업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긴밀해 협력해 추진했다면 지금쯤 얼마든지 엔조이 할 수 있었다. 경기도나 부산, 대구ㆍ경북, 호남 등지에 소규모 클러스터만 제대로 서둘렀다면 지금 이 순간 수출이 날개를 달 수 있었다.
이를 다운스트림 분야는 노동집약적 산업이라 일자리 창출의 일등공신 업종이다. 가득액도 높다.

섬유, 어영부영 허송하다 이 모양 됐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양말공장들을 지역특성에 맞게 소규모 단지 하나씩 만들어 집단화하면 관세 즉시 철폐혜택으로 재미 볼 수 있었다. 봉제단지도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수출봉제를 서둘렀다면 중고가품 제품수출기반을 갖출 수 있었다.

중저가는 단위 공장당 수천, 수만명 규모의 중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에 대적할 수 없지만 고급품은 한국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합심해 이 분야에 눈을 떴다면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허탈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현행 규정상 공단이나 단지조성은 국토해양부와 지방자치단체 소관이라서 지식경제부가 단독으로 해내는데 한계가 있다. 기껏해야 공동설비 지원이나 진입로 지원 정도만 지식경제부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경부가 자체적으로 어려울 때 지자체들에 이를 착수하도록 적극 중용했어야 했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단체가 삼각편대로 협력해 클러스터 조성을 진즉 서둘렀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어영부영 허송하다 한ㆍ미 FTA가 발효되고 말았다. 답답하고 한심한 상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섬산련, 의류산업협회 등 단체가 나서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채근해 봉제, 양말, 클러스터부터 서둘러야 한다. 그래야 한ㆍ미 FTA란 천재일우 호기를 허송하지 않는다. 실속 없이 한ㆍ미 FTA 수혜업종이란 달콤한 찬사에 허탈한 탄식으로 가슴앓이 하는 일은 하루속히 사라져야 한다. <本紙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