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나 기업, 국가를 불문하고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으면 거덜나는 것은 불문가지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2000달러인 그리스는 물론 4만달러 소득인 스페인도 복지란 미명아래 흥청망청 낭비하다 나라곳간이 바닥난 것이다.

당사국 혼자 망하면 그만이지만 유로존이란 연합체에 불똥이 튀어 연쇄반응을 일으켜 세계경제에 일파만파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유럽전역 수출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수출전선에 비상이 걸린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행 총재까지 지금의 세계 경제상황은 대공황이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유로존 위기라는 먹구름이 세계경제를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의 혈관인 금융이 막힌다는 것은 위기를 넘어 그 나라 경제가 파멸로 가는 길이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식으로 남유럽 국가들이 빚내서 살다가 빚에 깔려 파산위기에 몰린 것이다.

올해 최고 호황업종은 의류수출밴더

다행히 우리경제는 아직 세계에서 몇째 안가는 우등생이어서 안도감을 주고 있다. 97년 IMF를 시발로 2000년대 들어 여러 차례 위기국면을 거치면서 많은 고통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슬기롭게 극복한 결과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 불란서까지 신용등급이 떨어졌지만, 우리는 오히려 올라갔다. 2008년 이후 세계에서 신용등급이 올라간 나라는 우리와 호주, 칠레, 터키, 체코, 이스라엘 6개국에 불과하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강단이 있고 내공이 쌓였다. 그 중심은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7%에 이르는 수출 덕분이었다.
섬유수출도 비교적 선방했다. 유로존 사태로 웬만한 업종은 두 자릿수 마이너스 성장이지만, 섬유는 올 들어 5월 말까지 도합 1.6% 감소에 그쳤다.

5월 중 수출은 3개월 만에 상승세를 보여 작년 동월대비 2.1%가 증가했다. 올 들어 1월을 제외하고 2, 3, 4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유지하다 5월에 소폭이나 증가세로 반전한 것이다.
품목별로는 주력품목인 편직물과 인조직물, 교직물 수출이 감소세가 지속되었으나 화섬사와 면사수출이 크게 증가했다. 의류를 제외한 섬유제품류 수출도 두 자릿수 증가했다.

국가별로는 최대 수출국인 중국이 7.6%나 감소했고, 터키 22% 방글라데시 10.3%, 미얀마 46.4%씩 각각 줄었다. 대신 미국과 인도네시아, 사우디, 캄보디아, 대만, 영국 등은 대부분 두 자릿수가 증가했다.

그러나 5월에 섬유수출이 비록 2.1%가 증가했다고 하지만 이것이 6월 이후 하반기에도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유로존 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심도있게 들여다보면 올해 섬유수출에서 비교적 안정성장을 유지하는 대표적인 호황업종이 의류수출밴더들이다.
주시장인 미국의 백화점과 대형 스토어와 거래하면서 작년보다 외형은 물론 내용도 좋아진 것으로 보여진다.

세아, 한세, 한솔섬유 등 이른바 ‘빅3’의 올 상반기 영업실적은 작년보다 훨씬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3억달러의 수출목표를 책정한 세아상역은 목표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보여진다. 아이티에 대규모 봉제 전용단지를 만들고 인도네시아에 버티칼시스템을 구축하느라 투자비가 많이 들고 있지만 영업내용은 작년보다 좋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올해 의류수출 11억 달러 이상을 책정하고 있는 한세실업은 영업실적이 작년보다 훨씬 양호해 현 추세대로 가면 올 연말 결산에서 700억원 규모의 순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작년의 순이익 510억원 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빅3중 신장률이 가장 높았던 한솔섬유도 오는 8월까지 오더를 집계한 결과 좋았던 작년보다 12%나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과 비교하면 50% 가까운 고도성장이다.

이들 빅3 외에도 연간 1억달러 이상의 대다수 밴더들도 올해 외형과 이익이 작년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광림통상의 경우 작년의 2억달러에서 올해 50%나 신장한 3억달러 달성이 무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 의류수출밴더들이 섬유업종중 외형과 내용이 가장 좋은 것은 우선 원자재 가격이 안정된데다 미국의 의류수요가 예상보다 괜찮기 때문이다. 재작년 사상 최고 시세를 유지하던 국제 원면값이 추락하면서 원자재값 안정에 따른 이익구조가 좋아진 것이다.
미국의 소매 경기도 비교적 좋았다. 5월에도 콜스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 미국백화점과 스토어의 의류매출이 작년보다 5~10% 증가한 것이다.

이들 밴더들은 현재의 추세를 감안할 때 연말까지 이변이 없는 한 작년보다 좋은 경영실적을 낙관하고 있다. 더욱이 대형밴더들은 기존 미국시장의 확대 뿐 아니라 자라, 망고, H&M, 유니클로 등 세계적인 SPA브랜드와 서플라이어 계약을 맺고 이들에게 대량 수출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미국시장의 확대 뿐 아니라 무섭게 커가는 중저가 SPA브랜드를 공략하는 순발력을 발휘하고 있다. 해외에 구축한 매머드 소싱공장을 통해 양적공급에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대형 의류수출밴더들의 일취월장을 바라보면서 과연 이들의 성장의 과실이 국내 관련업계에 어느 정도 분배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들에게 원자재를 공급하고 있는 면방업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피골이 상접하다.

상대적 빈곤 피골이 상접한 면방업계

국내 면방업체들이 재작년에 떼돈을 벌었다고 하지만 작년 한해에 눈덩이 적자로 전부 까먹고 말았다. 올 상반기 장사도 모두 적자에 시달려 면방 상장사마다 ‘적자지속’, ‘적자전환’이 대부분이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국산품 사용을 강요할 수 없지만 어떻게 해서든 가급적 국내 원자재를 많이 사용하고 그래서 그 과실이 국내에 보다 많이 떨어지게 하는 방안이 발등의 불이다. 밴더는 배터지고 면방, 화섬 등 원자재 업계는 배곯아 죽는 모순을 피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어차피 인력난과 고임금으로 국내에서 대규모 봉제는 불가능하지만, 소재만은 가급적 국내산을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외할머니 떡도 싸고 맛있어야 사먹듯”그러기 위해서는 국산소재의 차별화와 가격경쟁력이 선결과제다.

글로벌 경영에서 성공을 거두는 대형밴더들의 일취월장과 더불어 국내 소재산업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적극적이고 다각적인 처방이 시급한 과제다. 밴더들만 원망할 것이 아니라 면방, 화섬, 직물, 편직 등 소재산업의 차별화, 가격경쟁력 방안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국내 섬유산업이 알맹이는 다 빠지고 쭉정이만 남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