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한 공중파 방송이 지구촌에서 가장 무더운 나라의 기온을 동시에 조사했다. 낮 시간대 기온이 가장 높은 각국의 정오를 기해 조사한 결과 무덥다는 베트남의 호치민은 섭씨 33도였다.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는 35도였다. 그리고 적도에 가장 가까운 기니나 남미의 아이티도 36도에 머물렀다.

같은 날 한국의 경상북도 경산은 40.6도를 나타냈다. 기상관측 사상 가장 높은 기온이며 지구촌을 통 틀어 한반도가 가장 뜨겁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확인됐다.

자연이 왜 이다지 해코지를 하는지 연일 인두로 이마 지지는 삼복더위에 사람도 산천초목도 모두 헉헉거린다. 가뜩이나 불쾌지수가 치솟는 판국에 우라질 돈 먹은 정치권은 연일 시끌벅쩍 난도질을해 민초들은 더욱 부아가 치민다.

‘차떼기당’ 오명이 잊을만해지니 이번에는 ‘쇼핑백당’이란 신조어가 등장하면서 박근혜 대세론에 치명적인 흠결을 남겼다. 불난 집에 부채질 하듯 체포영장이 발부됐던 박지원 야당 원내대표는 불감청고소원하며 표정관리하고 있다.

수출ㆍ내수패션경기 빙하기 조짐

그래도 가마솥더위에 기진맥진하면서도 다행히 올림픽이 있어 행복했다. 당초 목표한 금메달 10개, 세계 10위권은 엄살이었을 뿐 기대이상의 금메달이 쏟아져 세계 4위로 등극했다.

더위에 지치고 정치권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였다. 대한민국 국민임이 다시 한 번 자랑스럽다. 올림픽이 끝나면 무슨 재미로 살지 걱정이다. 이제부터는 12월 대선정국에 후보간 거침없이 찌르고 할퀴는 진흙탕 싸움을 질리도록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우리 얘기로 돌아가 날씨도 덥고 사람도 덥고 섬유패션경기도 많이 지쳐있다. 자동차, 휴대폰 빼고는 모든 산업이 시난고난하듯이 섬유패션도 예외가 아니다.

섬유수출경기가 지구촌 곳곳에서 급속 냉각돼 재고가 쌓이고 내수패션경기 또한 IMF때가 양반일 정도로 추락하고 있다. 수출ㆍ내수 가릴 것 없이 마치 빙하기가 도래하는 것 같다.
웬만하면 스트림별 온도차이가 있고 기복도 있지만 지금의 상황은 총체적인 불황이다. 수요는 줄고 재고는 쌓이고, 가격은 내려 기업마다 소태씹은 표정이다.

면방업계는 작년부터 계속 되온 경기불황에 이젠 고립무원의 한계상황에 봉착했다. 일반 관리비는 고사하고 단순 생산원가만 고리당 800달러짜리 30수 코마사를 650달러에 팔고 있는 그야말로 ‘죽 쒀서 개 좋은 장사’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 몇년간 수급밸런스를 유지하며 엔조이하던 화섬업계도 지난 7월을 기해 적자로 돌아섰다. 이미 재고가 적정수준의 2배에 육박한 채 수요는 줄고 공급량은 급증해 거래선 쟁탈전이 벌어지고 자연발생적으로 가격은 추락한다.

원료인 PTA와 MEG가격이 치솟아 8월부터 폴리에스테르사값을 올리겠다고 통보는 했지만, 실수요업계에서 펄쩍 뛰고 있다. 해외시장 상황이 갈수록 오그라들고 있는 판국에 “원사값 인상이 가당치나 하는 얘기”냐는 반응이다.

합섬직물도 연사물을 제외하고는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사이징물은 작년 6월 이후 계속 바닥 밑으로 추락했고, 유럽의존도가 높은 교직물은 남유럽에서 시작된 재정위기가 전 세계를 덮치면서 빈사상태에 빠졌다.

합섬직물중 연사물은 그동안 호황을 만끽했으나 이마저 최근들어 주춤하는 기세다. 득달같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연사료가 제자리에 멈췄다.

그래도 그동안 수출비중이 가장 큰 니트직물이 선전했으나 이마저 상황이 급전직하로 변했다. 중국이 따라오지 못한 간판품목 ITY싱글스판 경기가 지난 6월 중반부터 폭삭 내려앉았다.

대구경북이건 경기북부이건 산지 내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웬만한 생산업체는 회사마다 200~300톤씩 재고를 가지고 있다.
ITY싱글스판이 주저앉으니까 베네치아로 돌고 있지만 이 역시 가라앉아 업체간 과당경쟁만 치열할 뿐이다. 연사료가 주춤한 근본원인도 ITY싱글스판 경기가 죽었기 때문이다.

니트직물ㆍ우븐직물 가릴 것 없이 경기가 냉각상태로 치닫자 염색가공업계는 연쇄적인 물량기근에 휘말렸다. 대구염색공단 입주기업중 감량가공 업체를 제외하면 물량이 없어 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반월과 시화, 경기북부 염색공장의 물량기근은 더욱 심각하다. 오죽하면 세운공장이 늘어나고 매물로 내놓은 염색공장이 증가하겠는가.

수출위주의 섬유산업구조상 해외시장이 재채기하면 금방 몸살감기를 앓게 돼있다. 지금의 수출시장은 단순 감기몸살 정도가 아니라 토사곽란 상태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내수패션경기는 두말하면 잔소리일정도로 급속히 주저앉고 있다. 백화점들이 창업 이래 최초로 여름정기세일을 한 달이나 끌고 가도 매출은 뒷걸음질이다.

IMF 때는 명품매출이 늘어났지만 지금의 상황은 부자들마저 지갑을 닫아버렸다. 부동산 경기침체를 비롯 자동차 판매량이 크게 감소하는 상황에서 내수패션경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림픽 금메달처럼 치열하게 돌파해야

그러나 세계경제가 대공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해서 고래심줄보다 강한 우리섬유산업의 생명력이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는다. 그동안 IMF와 외환위기 등 숱한 고비를 맞았으나 조난되는 기업보다 살아서 성장하는 기업이 훨씬 많았다.

문제는 어려움에 대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차별화 특화제품을 통해 비상구를 마련하는 전략이다. 지난날의 어려운 고비도 그렇게 극복했듯이 지금 이 순간도 그런 사즉생(死卽生)각오로 경쟁력을 배양하면 얼마든지 승산이 있다고 본다.

경제공황이 시장에 타격을 안기지만 기본 수요는 있기 마련이다. 조급증을 견디지 못하고 들쥐떼 근성으로 시장을 망치는 것보다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참고 견디는 업계의 공동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 달 크면 한 달 작듯이 경기는 공황이 걷히면 금방 활황으로 반전하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보편적 원리다. 수출이건 내수이건 접시물 경기에 울고 웃을 것이 아니라 냄비근성을 버리고 무쇠 가마솥 전략으로 불황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의 올림픽 4위 기적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요술이 아니다. 뼈가 아스라지는 고통을 참으면서 치열하게 훈련했기 때문이다. 섬유패션기업도 그 같은 치열한 고통을 감내하며 구조조정과 차별화, 특화, 마케팅전략을 통해 대공황의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